
비가 몇 시간째 쏟아져 강남의 거리는 형광등 불빛이 일렁이는 물결로 변해 있었고, 나는 그저 도시의 풍경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 둔 채 목적지 없이 걷고 있었다. 길을 잃은 건 아니었다 강남 가라오케 . 그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흔히 그렇듯,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 작게 빛나는 직사각형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어로 ‘노래방’이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karaoke’라고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곳은 과일 향 방향제와 낡은 카펫 냄새, 그리고 나중에야 비로소 그 공간 특유의 냄새임을 알게 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냄새가 뒤섞인 세상이었다.
카운터 너머에서는 작은 TV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여자가 내가 들어왔을 때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었고, 여자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코팅된 메뉴판을 카운터 위로 밀어주었다.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그 이상. 나는 두 시간을 선택해 현금으로 계산했고, 숫자 ‘7’이 불로 지져 새겨진 나무 패가 달린 열쇠를 받았다. 여자가 계단 쪽을 막연하게 가리켰고, 나는 그 계단을 올라갔다. 베이스 소리에 진동하는 문들을 지나, 누군가 발라드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불러 가사 사이사이 숨 쉬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방을 지나쳤다. 마침내 7번 방을 찾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작았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작았다. 방 한쪽 벽면에는 소파가, 그 앞에는 두 사람 정도가 앉을 만한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반대편 벽면 전체는 모니터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벽은 짙은 회색의 방음재로 덮여 있었고, 천장은 낮아서 마치 기계 장치를 위한 상자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소파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손에 든 마이크는 생각보다 묵직했고, 리모컨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습니다. 나는 두껍고 묵직한 노래 책을 쳐다보았습니다. 책 안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로 된 수많은 곡목이 적혀 있었고, 나는 무엇을 불러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무작위로 노래 한 곡을 골랐습니다. 영어로 된 노래였는데, 내가 잊으려고 애썼던 시절의 발라드 곡이었습니다. 싸구려 음질의 깡통 소리 같은 MIDI 반주가 시작되었고, 모니터에는 세 가지 언어로 가사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는 작고 자신이 없었지만, 방 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할 뿐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동안 가슴속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서서히 풀려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 중간에 가사를 잊어버려 즉석에서 지어내어 부르기도 했고, 음정을 완전히 틀리게 잡기도 했습니다. 노래가 끝난 뒤 점수는 56점이 나왔고, 모니터에는 대략 “열정적인 마음은 가졌지만 연습이 필요하네요”라는 뜻의 메시지가 떴습니다. 나는 그 좁은 방 안에서 홀로 소리 내어 웃었고, 내 웃음소리가 방음벽에 부딪혀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한국에서 노래방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노래방은 노래 실력이나 완벽한 공연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핵심은 ‘편안함’에 있습니다. 사회적 압박이 거세고 모든 것이 철저하게 관리되는 이 나라에서, 노래방은 유일하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되고, 저렴한 MIDI 반주에 맞춰 마이크를 잡고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도 괜찮은 곳이니까요.